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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혹성의 아이 포스터

혹성의 아이

A Child from Green Planet

영화, 단편, 패키지 구성, 2025


*** 본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진은 인스타그램 계정 @greenplanet.director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Creator: Various Artists Project Type: Short Film Year: 2025

제작자: 감독 본인 외 다수 프로젝트 유형: 단편 영화 연도: 2025

[시작]

<상실된 한국영화의 욕망과 시대의 종언 - 그리고 새 시대의 영화>라는 소논문은 <혹성의 아이>라는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무렵에 영화를 만들어 봐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소논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영상 문해력이 높아지다 못해 창작자로서의 자아마저 일부 가지게 된 2020년대의 영화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인들은 전략 수립을 잘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객들의 주체성과 소비 형태를 존중하고 그들의 파편화 된 취향을 공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오타쿠화’ 되었다는 것은 만화를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때문에 그들의 취향과 소비욕구를 만족시키는 과정을 몸소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졸업 후에도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었다. ‘가장 성공한 예술은 가장 성공한 사업이다.’ 라는 앤디 워홀의 말에 십분 공감하는 편이었으니.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순도 100퍼센트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경험에 의거, ‘단편’은 창작자 본인이 다루기 어려워하는 형태 중 하나였고, 이에 ‘영화의 시나리오’보다는 ‘일본 양산형 단편만화’ 속 인물과 구성을 차용하기로 했다.

일본 양산형 단편만화의 특징은 이러하다.

  1. 기승전결보다는 순간순간 캐릭터의 매력이나 컨셉을 강조한다.
  2. 독자가 감정적으로 동요할만한 (때로는 과한) 단 한 순간이 존재한다.
  3. 여운을 주는 엔딩을 맞이하며, 장편으로의 확장성을 염두해둔다. (혹은 2차 창작으로의 확장 가능성)

아즈마 히로키가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에서도 강조했던 ‘모에 요소’가 만화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은 <에반게리온> 이후 대단해졌다. 재패니메이션과 망가에 익숙한 이들이 위와 같은 단편만화의 문법에 익숙함을 느끼며 불편해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작품 자체를 하나의 완성도 있는 ‘걸작’으로서 향유하기 보다는 씹고 뜯고 맛볼 여지가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성이 짙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주인공들이 서 있는 모습. 좌측부터 아스카, 마리, 신지, 레이, 카오루

따라서 <혹성의 아이>는 하나의 잘 구성된 짧은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툭툭 튀는 만화 속 캐릭터들로부터 시작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편만화의 양식을 참고한 바, 모든 장면은 유기성이 떨어질 지언정 튀는 구석이 있게 작성되었고, 그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상물을 계속 시청하도록 추동시키는 연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따라 <혹성의 아이>의 초기 구성안은 모두 ‘만화’였다. 줄글로 정리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는 기획에 가까웠다.

[스태프 모집]

당시 재학 중이던 경희대학교에 편입학한 후 별다른 연고가 없었기에 <캡스톤 디자인> 수업 시간을 활용해 학번, 나이에 관계 없이 팀원들을 모집하였다. 모집 방식은 직접 그린 그림을 포함한 잘 구성된 피피티와 프론트엔드 개발자 김지훈 (@jiihuuun_)과 함께 제작한 홍보 웹사이트를 통해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본인 포함 총 14명의 스태프를 구성하였는데, 원래는 기존에 영화과 밖에서 작업하던 방식대로 누벨바그 혹은 지가 베르토프의 그것과 가까운 작업방식을 구상했으나, 그 정도 인원의 동료들이 생긴 이상 해당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혹성의 아이 캡스톤 디자인 수업 프레젠테이션 표지

혹성의 아이 홍보 홈페이지 메인 화면. 세 주인공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습이 배너에 걸려있다.

[배우 모집]

배우 모집은 역시 사전에 제작한 홍보 웹페이지는 물론, 모집 포스터를 따로 제작하여 유구한 전통의 필름메이커스에 공고를 업로드 하였다. 총 400명+의 배우가 프로필과 함께 참여 의사를 보내주었고, 총 13명의 후보 (젤리 후보 4, 허쉬 후보 4, 포니 후보 3, 미정 후보 1)를 선정한 후, 8명의 후보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였다.

연락처 등을 포함한 혹성의 아이 배우 모집 공고 포스터.

캐스팅 방식은 기존의 딱딱한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앞에 세워 연기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으며, (심지어 이미 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나와는 물론 배역과 맞는 사람을 파악하는 스스로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후보군들과 강남 교보문고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나 2시간 정도 음료나 한 잔 하며 대화하는 것을 캐스팅의 방식으로 삼았으며, 이는 훌륭하게 맞아들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그냥 그대로 있어도 캐릭터 그 자체인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캐스팅이 결정된 후에는 함께하지 못한 400명의 다른 지원자들에게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었다. 기본적인 템플릿을 만들어놓은 후, 지원해준 배우에게 맞게 중간 문단의 멘트들을 바꿔 발송했다. 정말 그들의 연기와 프로필을 하나하나 들여다 봤기에, 그걸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거짓말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에 일부는 답신을 주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후보들 가운데 젤리 역에 배우 신시예, 허쉬 역에 배우 유가은, 포니 역에 배우 차승주가 주연으로서 캐스팅되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혹성의 아이>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신의 계시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로 극적이고 운명적이었다. 마치 일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느낌으로 진행되었고, 결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기묘한 방향으로 가능해진 것은 캐스팅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간단히 말해, 처음 진심으로 임해본 캐스팅은 마법과도 같은 과정이었다. 만화 캐릭터를 상정하고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어떤 배우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 밖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지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이었다.

혹성의 아이에 캐스팅 된 세 명의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찍은 사진.

포니의 경우 너무나 확고한 후보가 있던 와중에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줄 배우가 나타났었다. 때문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과 캐릭터의 관계성을 살피는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원래 디자인 한 캐릭터의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였다. 당시에는 포니라는 캐릭터가 가진 쾌활함과 훤칠한 외모에 중점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실 승주 배우와의 몇 차례 만남에서 쾌활함보다 다른 걸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로페셔널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차분하고도 냉철한 감각, 속을 잘 들여다보기 어렵도록 의중이 숨겨진 미소, 여지를 두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 단단함 같은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처음에는 ‘그냥 그대로 있어도 캐릭터 그 자체인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오히려 그런 미묘함에서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후에 포니라는 캐릭터에 대해 더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이 선택의 근거를 깨달았다.

포니 역할의 배우 차승주가 카메라 모니터 안에 찍힌 모습.

포니는 진중함과 쾌활함을 모두 가진 인물이었다. 포니를 연기하는 건 두 가지 얼굴이 동시에 드러날 수 있는 배우여야만 했고, 본능적으로 양가적인 이미지에 끌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무식하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진중한 얼굴이 멋지고 웃는 모습이 예쁜 배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상을 통해 확신하고 있던 뛰어난 연기력이 포니라는 캐릭터에 살을 더해 상상했던 허쉬 친구 포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분에 넘치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허쉬의 경우 배우들과 대화를 진행할수록 미스터리에 빠졌던 경우인 동시에, 후보군 자체도 부족했다. 젤리와 더불어 감독 본인이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너무 ‘오타쿠’스럽게 만들어버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세상 심드렁하고 방어적이며 약간은 틱틱대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고, 적당히 딱딱한 인상에다가 소녀다운 앳된 느낌이 충만한데 누가 봐도 예쁘기까지 한 배우, 아니 사람.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몇 가지 사안을 타협할 각오를 한 후 배우들을 만나 보았고, 허쉬 후보군에 있던 배우들은 실제로 몇 가지를 타협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후보군들에 비해 나이가 너무 어려 미팅 대상에 포함하기를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가은 배우를 만나기 전까지는.

허쉬 역할의 배우 유가은이 촬영 장소인 컨테이너 내부에 분홍 후드와 안경을 쓰고 서 있는 모습.

가은 배우가 결국 후보에 들어갔던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다른 후보들처럼 카메라에 잡힌 모습과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감독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나이에 구애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만나보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배우를 어느 정도 알게 되다보니 마냥 귀여워보이지만, 당시에는 아우라 비슷한 것을 느꼈다. 태가 다르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영락없이 그 나이대의 소녀일 뿐이었다. 다만 눈빛이 깊고 목소리가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지고 태어난 것이 너무나 좋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10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눈빛과 목소리를 가졌는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직 10대이다보니, 그 나이대의 발랄함도 눈에 띄었다. 무심하게 고민을 얘기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텐션이 확 올라갔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꾸밈이 없었다. 허쉬였다. 07년생이라는 나이가 자꾸 아른거렸지만, 같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던 스스로를 떠올리며 결정을 내렸다. ‘17세 유가은’이 아니라 ‘배우 유가은’만 보기로.

그리고 가장 큰 장벽은 당연하게도 젤리였다. 허쉬가 적당히 막무가내의 오타쿠 감독이 떠올린 망상에 가깝지만 있을 법한 캐릭터였다면, 젤리는 애초에 실존 인물의 축에 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화적 허용, 만화적 상상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스스로도 너무 막 나갔다고 생각하며 ‘젤리를 못 찾으면 영화를 접는다.’라는 생각까지 했고, 실제로 거의 그 상태까지 갔다. 얼굴 자체가 이미지에 맞는 배우는 꽤 있었지만 도무지 젤리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실제로 후보들과 얘기했을 때도 그랬다. 다들 너무 매력적이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젤리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지만, 작가로서 생각한 젤리와는 달랐다.

젤리 역할의 배우 신시예가 촬영 장소인 컨테이너 내부에 분홍 안경을 쓰고 과자와 음료수를 품에 잔뜩 끌어안은 모습.

시예 배우는 그렇게 자포자기 하고 있던 상태로 만났다. ‘이건 못 찾는다.’라는 확신이 들어버렸고, 타협을 해야 할지 <혹성의 아이>를 엎고 다른 시나리오로 갈지 선택의 기로에 이미 서 있었다. 심지어 시예 배우는 오로지 연기로 후보군에 올라갔으나, 어떤 캐릭터를 맡겨야 하는지 감이 아예 오지 않았기에 그렇다면 그냥 후보에서 빼는 게 어떻냐는 지인의 의견도 있었다. 만나볼 사람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보군 중에 모든 배역에 가능성이 열려 있던 배우는 처음이었기에 일단 만나기로 했는데, 거기서 잭팟이 터져버렸다. 시예 배우는 ‘현실에 젤리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단순히 성격이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과 주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배우 본인만의 별난 표현과 관점으로 대상을 고집있게 바라봤고, 진지했다. 무엇보다 대화가 즐거웠다. 나와 다른 관점을 집요하게 쏟아내는 이와 대화하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본 탓도 있었겠지만, 대화를 할수록 느낀 건 하나였다. 작가로서 젤리라는 캐릭터를 바라볼 때의 느낌과 같았다. 흥미롭고, 골 때렸다. 첫 만남에서 젤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분홍 안경을 썼을 때 쾌재를 불렀고, 머리를 볶고 나타났을 때 헛웃음이 났으며, 리딩을 들었을 때는 기가 찼다. 그 시점에서 ‘유레카’는, 더 이상 아르키메데스만이 외친 말이 아니었다.

언급했다시피, 돌이켜보면 그 외에도 기막히도록 운명 같은 일들이 많았다. 가은 배우의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이메일의 주소가 마침 Hush였다는 거라던가, <혹성의 아이>를 찍기 2년 전에 했던 대외활동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마지막으로 업로드 했던 영상에 배우 본인이 출연했었다던가, 시예 배우가 첫 만남 당시 마침 조만간 파마를 할 계획이었다던가, 여하간 우연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순간들이 몇 있었다. <혹성의 아이>라는 영화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만난 바로 이 배우들 덕분에 최종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돌이켜 봤을 때 감독 자신이 가장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것이 한스럽다. 내가 아니라 다른 훌륭한 감독이 이 배우들에게 이 캐릭터를 줬더라면, 정말 대단한 시너지를 보여줬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끔 스쳐 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음에 무한정 감사하게 되고, 또 한 번 작업할 그 날에는 더 나은 창작자로서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차승주, 유가은, 신시예 배우가 카메라 뒤에서 자신들이 찍힌 영상을 확인하는 모습.

[예산과 투자]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확정적이고 프로덕션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금전적인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투자자를 모색했다. 이는 순전히 중학교 시절부터 알아오던 친구가 투자 의사를 밝히면서 가능해진 ‘객기’에 가까운 방안이었다.

비슷한 시기, 대학에 입학한 이후 7년간 알아오던 친구 역시 투자의사를 밝히면서 초기 예산은 3백만 원으로 산정하였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대학 동기 한 명과 가족 일원 중 한 분, 그리고 원래 로케이션 제공에 도움을 주기로 하였던 모 교회의 집사님이 로케이션을 대신하여 자금을 지원함에 따라 총 예산 4백만 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투자’를 가장한 ‘주변에 손 벌리기’였지만, 나름대로의 구색은 갖추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 투자의 대가로 무료 제공할 굿즈 패키지에 대한 계획 발표 역시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투자금을 운용하는 것에 있어 다인원 여름 촬영이 처음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누수가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자금을 직접 관리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였고, 약 18만원의 적자를 보는 것으로 촬영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로케이션을 모두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던 점이 여름날 다인원 복지에 예산을 추가로 투입했음에도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도왔다.

날씨와 같은 대처 불가능한 천재지변이 없었더라면 투자금은 흑자로 남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최종적으로 적자 전환을 하였음에도 예산 운용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에 가까웠다고 회고하는 바이나, 정작 이것이 가능했던 근본적 이유는 감독 본인의 관리 능력에서 벗어나는 무언가였다. 바로 이 모든 과정에서 좋은 동료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재원을 감독이 모두 결정하는 제약이 넘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케어하고 일정에 차질이 있을 때마다 이를 타개하려고 힘써 준 동료. 그 동료가 없었더라면 ‘대처 불가능한 천재지변’은 날씨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비주얼 메이킹]

로케이션과 의상을 포함하여 <혹성의 아이>에서 가장 중요시 됐던 것은 ‘그림’을 ‘실제’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혹성의 아이>는 근본적으로 영화적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만화적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모든 비주얼은 만화적으로 고려되었다. 일본 양산형 단편만화의 법칙을 영상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이, 2D 비주얼을 3D로 옮기는 작업에 가까웠다.

젤리, 허쉬, 포니가 교복을 입은 그림.

그렇기에 핵심은 ‘비현실성’이었다. <혹성의 아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모든 컷이 현실의 것과는 동떨어져 보이기를 원했다.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결코 현실은 아닌,’ 어린 시절부터 즐겨보던 스필버그 영화 속 이야기 같은 무언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을 구현하고 싶었다. 비현실성으로부터 동반되는 낭만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논리적 이유를 벗어난 맹목적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케이션은 <혹성의 아이>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배우들에게 한국에서는 잘 입고 다니지 않는 대만풍 교복을 입힌다고 해서 그것이 비현실적 낭만성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모든 공간이 일상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이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최초로 고려되었던 것은, 모든 상호작용이 아지트화 된 카라반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사적이지만 공유될 가능성이 있는 공간’을 구현하기를 원했고,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 카라반이었는데, 여러 시도 끝에 현실적인 제약에 따라 공간 자체를 컨테이너로 변경하게 되었다. (짧게 요약했지만 그 변경된 공간인 컨테이너를 구하는 것에만 수 주가 소요되었으며, 뜨거운 여름날에 친구들과 함께 수만 보를 걸었다.)

미술 디자인을 끝낸 촬영 장소 컨테이너의 내부 전경.

<혹성의 아이>는 바로 그 컨테이너에서 모든 이야기가 전개 될 예정이었기에, 하나의 공간을 밀도 있게 구성하는 것이 필요했다. 다만 3X6의 정석적 사이즈의 컨테이너는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때문에 제작비를 최소화 하기 위해, 그리고 스태프들이 상주할 일말의 공간을 위해 출입구 쪽은 빈 공간으로 두고 그 안 쪽 세 개의 면을 디자인 하기로 하였다. 기본적인 도안은 역시 손그림으로 감독 본인이 만화적으로 구상하였으며, 함께 비주얼을 만들어 간 동료들이 디테일을 더했다. (벽에 붙을 논문들은 ‘Interstellar transmission, inter-galactic radio transmission’ 같은 키워드를 통해 실제로 우주 공간에서의 통신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 프린트 하였으며, 젤리라는 인물이 해당 공간에 오랜 세월 머물렀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한글 공부 벽지를 붙여놓자는 등, 나름대로 공간에 서사를 담으려는 각자의 노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컨테이너 공간은 오렌지 빛이 돌기를 원했다. 바깥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젤리라는 인물이 만든 공상의 세계처럼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며 창문을 모두 막아버리고자 했던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대부분의 전개가 이 컨테이너에서 이루어지지만, 외부 촬영 역시 이 ‘낭만적 비현실성 구현’이라는 아젠다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 대학 동기의 출신 고등학교가 드라마 촬영에도 많이 쓰인, 평상시에 보기 힘든 멋드러지게 생긴 학교였다는 사실은, 정말 결과가 어찌 되었건 일단 <혹성의 아이>를 완성 해 보기는 하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젤리와 허쉬가 함께 불꽃놀이를 하는 장소나 마지막 엔딩에서 세 주인공이 함께 걸어가는 장소 역시 모두 원래 계획과 다른 장소에서 촬영하게 되었지만, 모두 비주얼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 통제와 대응이 전부인 영화 현장에서 우연한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경우였지만 이 역시 모두 동료들의 노력과 경험이 동반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바라본 환일고등학교의 전경.

결론적으로 <혹성의 아이>의 비주얼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지만 핵심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필요로 했던 모든 것이, 상상했던 모든 것이 물리적 공간을 바꿔 다른 매력으로 구현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진행 중인 <혹성의 아이> 그림 소설에서 원래 상상했던 <혹성의 아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덕션]

촬영과 조명 등 디테일한 파트로 나눠 기술할까 고려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프로덕션 세팅에 있었으니 이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 필요했다. 그동안 여러 영상물의 감독을 맡으면서 느꼈던 가장 큰 지점은 ‘현장에서의 변수 제거’였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할 여건이 안 되었지만, <혹성의 아이>에서는 반드시 그것을 해내고자 했다. 스스로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약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씬, 모든 컷마다 렌즈 사이즈는 물론 거리, 카메라의 위치, 인물의 위치, 가능한 B, C안을 모두 도움을 받아 준비하고자 했다. 애초에 장소를 컨테이너와 같은 하나의 공간으로 지정한 것도 그것을 염두한 것이었으며, 쓸데 없는 변수 대응에 소비될 시간을 모두 제거하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촬영이 8월로 옮겨질 것이 예상되면서 이를 위한 시간도 확보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촬영이 7월 중으로 결정되면서 이를 위한 모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7월 촬영에 맞게 이를 대비해야 했던 것이 맞으나 그러지 못한 것인데, 문제의 원인은 단순했다. 서로 학기 중이라 촬영 감독과 시간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영화에 필요한 재원이 너무 많아 이를 현실화 하기 위해 감독으로서 ‘밖에 나돌아다닌 시간’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감독으로서 영화의 이야기와 구성, 촬영 방안에 가장 큰 힘을 들여야 했으나, 투자 설명회, 로케이션 프레젠테이션, 예산 관리, 비주얼 디자인, 배우 미팅 등을 선행하다보니 중요도가 가장 높은 일이 가장 뒤로 가 버렸던 것이다.

다만 이는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특히 예산과 로케이션, 배우 미팅 등은 정말 그 때, 그 날짜가 아니었다면 모조리 불발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제한적인 시간 내에서 당장이 아니라면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먼저 해결하다보니 중요한 것이 자연스레 뒤로 밀렸을 뿐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예 완성될 수 없었던 영화’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들을 하느라 ‘더 나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고 느껴진다.

인조잔디가 깔린 환일고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집결해서 촬영하고 있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모습.

그럼에도 어찌어찌 영화를 찍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촬영감독과 그래도 공유하는 시각이 비슷했기 때문에 즉각적인 임기응변이 가능했기 때문이 하나,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세팅을 따라올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동료들이 존재함에 따라 감독으로서 현장과 유리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을 그들에게 위임했다는 감각 때문인데, 이는 아마 감독 본인이 평소에 혼자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작업해왔던 날것의 작업 방식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는 바이다. 그동안 현장 자체에 주어진 빛과 피사체, 그리고 카메라를 든 ‘나’라는 단순한 관계성 안에서만 영화를 찍어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준비된, 공유된 환경에서의 독단적 행동을 지나치게 망설였다. <혹성의 아이> 때만큼 이기적이고 표독하지 않았던 때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원래 하던대로 독선적으로 나아갔어야 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실패한 과정에 큰 의미를 둔다.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고 보상이기 때문이다. <혹성의 아이>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은 프로덕션은 감독으로서 스스로 지향해야 할 현장의 모습과 구성, 환경에 대해서 제대로 고찰하고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혹성의 아이> 이후 작업 중인 작품 역시 그 고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제 후속 작품들의 적절한 운영을 통해서 이것이 맞는 방법인지를 증명하고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체계를 공고히 하여, 다음에는 배우들과 더 깊게 호흡 해내고 싶다.

카메라 모니터로 바라본 유가은, 차승주, 신시예 배우의 모습.

[편집]

기존의 즉흥적이고 중구난방이던 방식을 체계적으로 다듬었다. 맥북 에어에 프리미어로 단일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특히나 레이어링을 소홀히 했다가는 겉잡을 수 없이 플로우가 꼬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운드 믹싱과 색보정 역시 프리미어 프로 하나만 사용하여 작업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는데, 이 때문에 리소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프록시 파일을 만들어 편집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는 촬영 전, 촬영 당시, 그리고 편집 단계를 합쳐 총 3번 쓰여진다는 드니 빌뇌브의 말처럼, <혹성의 아이> 역시 편집 단계에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편집 버전만 4개가 존재했고, 그 중에는 씬 하나를 통째로 날리거나 중간에 원래 없던 씬들을 만들어 넣는 시도들도 존재했다. 가지고 있는 소스로 이야기를 기워 만드는 과정이었으며, 결국 기존의 촬영본에서 벗어나 별도로 제작한 새로운 소스들의 퀄리티가 원소스를 상회하지 못했기에, 원래 시도하고 싶었던 액자식 구성과 나레이터의 존재를 포함한 현재의 편집본으로 확정이 되었다. 사실상 이 과정에 대부분의 시간이 투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프리미어 프로로 편집된 혹성의 아이 타임라인의 캡쳐본.

일련의 과정 가운데 바뀌지 않은 한 가지 작업 방식은 바로 모든 사운드 소스와 푸티지를 하나씩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현장에서도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언급한 부분이지만, 이러한 작업 방식 때문에 스크립트가 있어 봤자 소용 없다. 잘못 찍힌 소스에서도 컨티뉴이티를 찾아낼 수 있고, 완전히 관계 없는 녹음본에서 써먹을 음성을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성의 아이> 역시 이 방식을 차용했으나, 앞서 언급한 듯 기존의 방식보다 조금 더 체계화하여 도표로 작성한 후 활용했다.

[음악]

편집 단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음악이었다. 작곡가를 찾아 함께 작업하고 싶었으나, 그랬다면 영화는 아마 지금도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방법이 ‘샘플링’이었다. 오랜 시간 힙합 리스너로서 음악을 청취해 온 경험을 통해 언젠가 작품에 직접적으로 써먹어보고 싶었던 방법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혹성의 아이>에서 원한 음악의 포인트는 확고했다. 하나의 명확한 모티프를 가지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마림바 음악. 문제는 그런 걸 너무나도 찾기 어려웠다. (<혹성의 아이> 작업 이후 진행 중인 베이스 기타 관련 다큐멘터리의 동료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는데, 원래 클래식 음악 쪽에도 마림바를 단일 악기로 활용하는 곡이 잘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몇몇 마림바 곡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 곡들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자르고 이어 붙여 영화에 삽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음악적인 측면에 있어서 모든 걸 충족할 수 없었다. <혹성의 아이>에는 감정적으로 느껴져야 할 씬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씬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2~3분 내외의 악곡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딱 알맞을 것이라 생각했던 곡들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의 사운드트랙 중 일부였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 역시 하나의 시험이었다. 타란티노가 <헤이트풀 8>을 만들며 <더 씽>의 음악을 떠올려 삽입한 것처럼, <펄프픽션>이나 <킬 빌>에서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활용한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음악의 활용’에 대한 스스로의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졸업작품이 아니라면, 언제 또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겠냐는 생각이 영화의 모든 부문에 일괄적으로 적용된 것인데, 신기하게도 선택한 곡들이 편집된 씬 내에 자르거나 늘릴 필요도 없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혹성의 아이에 사용한 음악들을 정리해 놓은 맥북 폴더.

결론적으로 <혹성의 아이>에 사용된 음악에는 창작자 본인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저 감독으로서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활용 능력에 대한 검증만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재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은 모두 작곡과 동료와 함께 자체 제작 중이다.

[AI 활용]

<혹성의 아이>에서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함은, 아무래도 AI의 압도적 활용률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방위적으로 AI를 사용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도 Suno에 프롬프트를 입력하여 만든 것이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목소리 중 일부는 Elevenlabs를 활용한 생성형 보이스이다. A3 포스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비율이 맞지 않아 포토샵 생성형 채우기를 활용하였으며, 디자인을 위한 목업을 만들 때 역시 이를 활용했다. 클래식 음악을 교양 수준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끔찍하게도 어려웠던 클래식 음악 디깅 역시, ChatGPT를 활용하여 진행했다. 예술가의 일상에서 인공지능은 이제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굿즈 디자인]

<혹성의 아이> 프로젝트의 끝은 영화 편집의 마무리가 아니었다. 기존에 구성원들과 배우들에게 약속한대로 관련 상품들을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마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졸업 영화이지만 졸업한 이후에도 굿즈 디자인 작업에 시간을 할애했다. 디자인 확정부터 생산까지의 모든 과정과 비용을 홀로 담당해야 했기에 몇몇 야심찬 굿즈들은 제외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오타쿠로서의 욕망’ 아래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굿즈들은 지켜냈다.

작업 기간, 선별 기간을 합쳐 총 두 달을 진행하였으며, 포토카드, 티셔츠, 핀 버튼 뱃지, 학생증, 오리지널 티켓, 스티커, 영수증, 편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완성하였다.

완성된 혹성의 아이 굿즈를 정리하여 올린 인스타그램 피드의 모습.

[후속]

<혹성의 아이>는 본디 제작자들에게 완성본 링크가 배포된 후, 자율적으로 공유하는 방향 이외의 상영 계획이 없었다. (음악 저작권 문제 등 애초에 영리활동이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는 플랫폼에 상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25년도 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해당 년도의 신입생 환영 영화제에 상영을 수락했다. <혹성의 아이>라는 작품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이 없음과 동시에 후배들이 준비한 영화제의 컨셉에 일치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이 영화를 졸업 영화제에 올리지 못하고 해를 넘긴 것에 대해 함께 한 동료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에 신입생 환영 영화제에서라도 상영해야 하지 않겠냐던 지도 교수님의 말이 진짜가 된 것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지만)

혹성의 아이를 포함하여 혹성의 아이를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의 영화가 상영되는 2025년 경희대학교 신입생 환영 영화제를 홍보하는 캐릭터 포스터

<혹성의 아이>는 풍파 속에서 탄생했다. 졸업영화를 핑계삼아 ‘하고싶은 걸 어디까지고 했을 때 어디서부터 망하나 확인해보겠다.’는 감독의 이기적이고 치기 어린 선언 위에 과분한 노력과 재능들이 함께 해주었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며 <혹성의 아이>를 완성하기까지의 오기와 집착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채 다음 작품으로 향한다.